필요없는 말은 소음 or 자장가가 된다.
절심함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도 습득하는 정도와 깊이 내용이 달라진다. 특히 학교와 같이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학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강하는 학생들이 많은 곳에서는 이런 모습을 사방에서 볼 수 있으며 수시로 느낄 수 있다. 나 자신도 그런 것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말을 한다는 건 전달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상대방을 웃기고 싶다거나 미소짓는 얼굴이 보고 파서 건네는 농담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의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치만 그 말이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전달하고 싶은 의사는 그저 소리에 그치고 만다. 때론 소음 또는 자장가가 되기도 한다.
소음 1
어제는 '회장을 그만둔다고 했었던' 학생회 회의가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회식을 하러 갔다. 난 자연스래 회식을 하며 다음 행사 준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길 바랬다. 하지만 그건 나의 바램일 뿐 웃고 떠들기 바쁜 간부들 속에서 소외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학생회 얘기를 꺼내기 조차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회의 때는 조용히 뒷모습만 보이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더욱 커져갔고 나는 점점 기분이 나빠져갔다. 이러려고 회식을 한다고 했던게 아닌데.. 아니 어쩌면 이건 나의 욕심인가.. 회식은 원래 이런거고 내가 이상한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난 별 시덥잖은 농담에 건성으로 대답좀 해주며 밥을 먹고 서둘러 학교로 돌아갔다. 그자리에서 그들에게는 나의 학생회 이야기가 소음이 됐을 것이다.
소음 2
정말 정말 듣기 싫은 수업이 있다. 나이 많고 급하게 구해진 강사여서 그런가 영 시원찮다. 얌전하게 말해서 시원찮다는 것이지 온라인임을 생각하지 않으면 막말을 할 수도 있다.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어야 하며 그 사람이 집중을 하지않고 듣기 싫어한다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18명. 그 중에 딴짓 하는 애들은 10명. 진짜로 그 수업을 열심히 듣는 애들 5명. 나머지는 극악무도 하게도 잘 듣는 척! 하는 학생들. 나는 완전히 딴짓하는 애들에 포함된다. 그 시간에 코딩하고 번역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내가 수업에 나태한 학생이여서 그럴까? 전혀 그렇치 않다. 난 김인규 교수님 수업인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수업 때는 그 누구보다 더 열성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그 수업이야 말로 나의 모든 열성을 퍼붓는 수업이며 그럴만한 가치와 재미가 있는 수업이다.
잠재우기 1
오늘 어느 교수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모든 학생들에게 조금 있으면 취직해야하는데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냥 뭐.." 부터 "토익...", "인턴..." 이라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나는 "페라리, 벤츠를 끌고 다니는 여자를 만나 결혼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앞서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초스피드로 댓글 달듯 대답을 해주는 교수님을 보니 정말 궁금한 것이 아니라 미리 무언가 해줄말을 준비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내 '진짜 얘기'를 해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온 해줄 말을 시작하셨고. 주요 내용은 "높은 위치에 오르려면 부지런해야한다." 였다. 졸려 죽는줄 알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도 있지만 너무 뻔한 이야기 인데다가 "높은 위치"라는 모호한 의미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키워드에 대한 정의를 교수님 나름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는 그런 "높은 위치"라고 하면 떠오르는 어떤 커뮤니티가 있다. 그 분들이 나에게는 "높은 위치"이며 그 곳에 다가가기 위해 갈망한다. (물론 몸과 머리도 같이 갈망하면 좋으련만...)
말하기 1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렇치 않은 사람이 있다. 먼저 상대방의 태도를 본다. 정말 내 이야기를 듣고싶어하는지를 살펴보고 아니다 싶으면 농담을 한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싶어하는 눈빛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퍼붓는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눈빛이 흐려지면 난 그만둔다. 정리하는 멘트로 들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눈이 똘망똘망하면 난 내가아는 것의 끝을 보여주며 "난 여기까지만 안다.", "이건 모르겠다."라는 말로 끝낸다. 그이상은 모르기 때문에 더이상 말 할수가 없을 때 까지 말을 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경우는 매우매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