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식이 있었습니다. 1차에서 거나하게 먹었습니다. 소고기 같은데 명칭도 익숙치 않은 부위들이 좀 비싼 맛이 나는 고기였습니다. 일단은 배를 채우기 위해 별로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별로 할 얘기도 없었고 항상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걸 끊어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렇게 중요한 얘기도 없었습니다.

2차에 가서는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중간 중간 슬슬 저에게 '왜 말이 없냐?'라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ㅎㅎ;; 이것 참.. 듣기도 바쁜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다른분들이 하고 계신 말들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정말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빨간 딱지가 들어와서 차압당하는 이야기, 영업이야기, 프로젝트 이야기, 남자 여자 이야기, 대선 이야기, 대학생 시절 이야기...

그러는 와중 술집의 TV에는 소녀들이 빙상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김연아도 있었고, 얼핏 보기에 1등을 한 것 같았습니다. 회식자리가 보통 시끄러운 술집이 아니라서 저 멀리 하고 계신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느니 TV를 보는게 더 맘이 편하겠다 싶어서 소녀들의 댄스를 감상했습니다. 김연아가 초반에 공중에서 돌다가 빙상을 짚었습니다. 실수를 한 것 같지만 그래도 1위에 Rank되더군요.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졌습니다. 부끄러워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습니다.

김연아 때문만은 아니였습니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을 하기 전에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러 어린 선수들이 빙상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어린 여자아이도 자신의 꿈을 위해서 지금 이 시간 저렇게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데 난 지금 이게 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맥주나 홀짝거리고 있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묘하게도 '노는대학생'과 '도전의 미학..' 블로그 주인장들이 떠오르면서 그 증상은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할텐데.. 나는 잘난놈도 아니고, 똑똑하지도 않은데.. 내가 지금 이렇게 놀고 먹으면서 대체 뭘 하겠다고 하는건지.. 솔직히 좀 화가 났습니다.

그뒤로 저는 더 말 수가 줄어들었고, 결국 3차로 노래방에 가는 회사 선배님들과 신입 사원분을 뒤로하고 혼자서 집에 가겠다고 하고 왔습니다. '오랜 시간 고생하셨습니다.'(약간 비위가 상하신듯..)를 뒤로 하고 돌아서서 집에 왔습니다. 도무지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제 머리속에서는 저의 미래와 그 미래를 위해서 제가 오늘 무엇을 했느냐와 반성이 계속 될 뿐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도 이런 기분을 오래동안 지속시키고자 기록하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 엄청난 대비 효과로 저에게 경각심을 불어 넣어준 빙상위의 요정들 감사합니다. 제가 비록 당신들의 몸짓을 감상할 만큼 예술적인 시각은 없지만, 그 노력하는 모습을 몰라 볼 만큼 장님은 아니라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ps : 오늘 하루 나는 내 꿈을 위해 노력했느냐...